[홍영수 칼럼] 문자를 걷고, 세상을 읽다

홍영수

가을이다. 그리도 아쉬운 듯 천천히 물러가는 뜨거웠던 여름. 그러나 어김없이 찾아드는 햇살 좋은 이 계절. 흔히 얘기하는 독서의 계절이다. 도서관에서, 서재에서, 공원 벤치에서 때론 침대에 드러누워 한 권의 책을 손에 들기 좋은 때이다. 

 

얼마 전, 회색빛의 삭막한 도시를 벗어나 깊은 산속의 숲길을 소요음영하며 걸었다. 그곳까지 가는 길에서 만났던 바다와 호수와 작은 마을들을 스치고 지나가며 보았던 풍경들이 집에 돌아와 쉬는 동안에 다양한 의미로 다가왔다. 어쩜, 한 권의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처럼, 여행길에서 만나듯 평소와 다른 색다른 풍경들을 만나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집을 떠난 나그네의 낯선 발걸음에 누군가가 어디로 가느냐고 묻는다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질문이 아닌가 한다. 타는 목마름의 갈증을 적시려는 나그네의 발걸음을, 한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 어떻게 그 의미를 알 수 있겠는가. 

 

도서관에서, 집의 책장에서 집어 든 한 권의 책을 읽고 있는 사람에게 어떤 책이고 무슨 내용의 책을 읽는 중인가를 묻는 것 또한, 우매한 질문이다. 왜냐면, 갈증에 허기져 보지 않은 사람은 갈증에 목말라하는 이유를 모르기 때문이다. 목마르다는 것, 그것은 물을 마시고 싶다는 것이다. 물은 목마른 자에게만 주어진 선물이고, 목말라하고픈 자에게만 목이 마르는 것이다. 

 

익숙한 공간을 벗어나 낯선 공간에 서면 그때까지 알지 못한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때 나는 누구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스스로 질문을 던진다. 이런 점은 여행길에서 겪을 수 있는 경우이다. 독서 또한 호기심과 지적 탐구를 위한 여행이다. 그 여행길에서의 사색과 일상적인 관성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된다. 이때 단단히 굳어져 막힌 머리가 유연해지면서 창의적인 사유를 하게 된다. 여행에서 얻는 것은 삶의 반경을 넓히고 독서에서는 사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 이 둘이 함께할 때 우린 머릿속에 기억하는 것을 넘어 더욱 성숙해지고 성장하게 된다.

 

카뮈는 “여행은 쾌락이 아니라 고통이다”라 했다. 독서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나그네처럼 지친 발걸음에도 의욕이 넘치며 생기로 가득한 자들을 흔히 볼 수 있듯이, 심신의 피로감에도 생기를 얻는 역설의 여행, 바로 익숙함에서 벗어나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기 위해서다. 비록 하나의 가능성을 찾다가 실패할지라도 말이다.

 

가끔 특정한 목적지 없이 발길 닿는 곳으로 여행을 떠날 때가 있는데, 그것은 익숙한 곳이 아닌 낯선 곳에서 만나는 풍경들에서 경이로움을 느낄 때가 있기 때문이다. 칠흑의 어두운 밤에 날아다닌 반딧불이와 풀숲 반딧불이의 반짝이는 신비로운 장면처럼 책장에 수직으로 꽂힌 책들과 분류하지 않아 널브러진 책들의 활자에서 새어 나온 빛들 또한 놀라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심장에서 지워지지 않고 문신처럼 새기고픈 문장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때 밑줄을 긋고 메모하면서 되새기고 싶은 글들을 적어 나가기도 하는데, 여행에서 느낀 경이로움과 아름다움 또한 마찬가지로 가슴 한편에 새로운 문장으로 새겨지는 것을 느끼기도 한다. 

 

책 속을 거닐며 여행하고, 걸어 다니면서 하는 독서. 우린 왜 읽어야 하고 떠나야 하는 걸까.

 

 

[홍영수] 

시인. 문학평론가

제7회 매일신문 시니어 문학상 

제3회 코스미안상 대상(칼럼)

제4회 한탄강문학상 대상

제7회 보령해변시인학교 금상 

제6회 아산문학상 금상 

제5회 순암 안정복 문학상 

제6회 최충 문학상 

시집 『흔적의 꽃』,『지구의 유언장』

이메일 jisrak@hanmail.net

 

작성 2026.10.05 11:01 수정 2026.10.05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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